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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

 

 

사복음서에 빠뜨리지 않고 기록된 유일한 기사가 있습니다.

 

마 14 : 13-21

막 6 : 30-44 

눅 9 : 10-17

요 6 : 1-14

 

저는 특별히 요한복음서의 이 사건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이 동일한 이야기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행하셨던 이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후부터 예수님을 향한 죽음의 그림자가 더 짙게 깔려오게 됩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큰 획을 긋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늘로부터 내려진 생명의 양식 되심과,

모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야 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다같이 기록된 유일한 사건으로

예수님 공생애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의 길을 현저하게 암시하셨습니다.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공생애 후반 사역을 앞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진 생명의 떡으로 보이신 사건이 바로 오병이어의 이적입니다.

 

이 처럼 중요한 사건 이기에 사복음서 기자들은 다같이 이 이적을 중요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이 사건을 보다 넓게 공적으로 다루었고,

요한은 보다 개인적인 면을 강조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때는 바야흐로 유대인의 최고 명절인 유월절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이때는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는 시기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디베랴 바닷가에서부터 벳새다까지 좇아온 수 많은 무리들 중에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 무리들은 디베랴에서 벳새다까지 따라오는 열심을 보여주었지만,

실상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소문이나 단순한 호기심으로 좇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좇은 그 큰무리들의 대부분은 표적만 구 할뿐

참 믿음을 사모하는 자들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같은 무리들에게 풍성하게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심으로써

진정 자신을 하늘로부터 오는 풍성한 생명의 떡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1절에서 14절 까지의 말씀 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제자들은, 주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님에게 찾아나온 자들이 굶주려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그 무리들을 먹일 만한 재정적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무리들을 마을로 돌려 보내려고 했는데,

마태복음 14장 15절에서 15절의 기록을 살펴 보면 바로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코자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믿음으로 이 상황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이백 데나리온’을 들먹이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제자들은 자비하시고 은혜가 충만하시며 전능 하신 주님 앞에 서 있으면서도,

천지의 주인이시고 주체이신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대신에 자신들의 상황, 주위의 환경만을 바라봄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주 되심에 대해서 신뢰를 온전히 갖지 못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 또한 누구라 할 것 없이....

당면한 사역적 어떤 문제들 앞에서 제자들 처럼 상황과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바르게 신뢰하지 못하며 사역들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이 부분에 한 없이 자유롭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필요한 재정이 언제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사역이든 제대로 섬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없이 자신의 것을 모두 주께 드린 한 아이의 섬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위축된 상황에 한 가닥 희망스런 일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음식은 그 아이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음식은 결코 5천 명의 무리들을 먹이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양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얽매이지 않고

그 음식을 예수께 바침으로써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얼마나 진실되고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느냐, 또는 드리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데 있어서 우리들의 가진 것을 예수님 발 앞에 드리기에 힘쓰는 자는

그의 지위, 재능, 건강 여부를 떠나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변변치 못한 작은 도시락이었던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마치 가족들이 둘러 앉은 식탁의 가장처럼 감사의 기도를 하신 후에

그 떡과 물고기를 떼어 5천 명의 무리를 먹이셨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조금씩 아끼면서 떼어 주신 것이 아니셨을 것입니다.

저희의 원대로 풍족히 배부르고 남을 만큼 주셨다고 11절, 12절에서 언금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풍요와 풍성이셨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한량없으신 주님께서는 이처럼 주님을 바라는 영혼들에게 차고 넘치게 공급해 주십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시편 23편 1절의 시인의 고백이 생각 났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복음 전도자들과 주님의 사역자들은,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부르는 모든 영혼들을 부요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 : 11-15)


이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몇몇 제자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예수님을 좇는 무리들을 먹일 음식을 어디서 구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의 이 질문은 빌립이 어느 정도까지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지 시험하신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벳새다는 빈들판이었으므로 떡을 사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모인 무리가 워낙 많은지라 비용도 많이 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적으로 현실적으로 모여든 군중의 무리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만한 조건들은 전무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을 살펴 보기 위해서 저는 조금더 집중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듯이 고대근동의 이 사건의 현장으로 마음을 집중해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님의 질문은 떡을 파는 장소를 물은 것이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질문은 무리들에게 떡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하나님의 섭리와 주니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얼마나 깨어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의 시험적인 질문에 대해 주님이 원하시는 답변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빌립은 벳새다 들판에 모여든 무리를 어림 짐작으로 세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무리들, 바로  그들을 먹이는데 드는 떡값을 계산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 각각의 개개인들에게 조금씩만 먹인다 할지라도 약 200데나리온의 비용이 들것이라고 계산해 본것입니다.

당시 1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 이었으므로 200데나리온은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었습니다.

어쨋든 빌립은 주님께 대략 200 데나리온 정도의 비용이 들어 갈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빌립의 대답은 이 상황에 대해서 무척 상당히 합리적이며,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의 심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답변을 하였던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역에 제자들도 동참시키기 위해 의견을 물으신 의도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생각의 한계만을 뚜렷하게 드러 내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빌립의 답변은 인간적인 면에서 옳고 정확했지만,

예수님의 뜻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 날 복음전도자들이라든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역자들도 빌립과 비슷한 형태의 대답을 좋아 합니다.

최소한 저 역시 다를바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가요?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사실 저의 가장 큰 관심은 한 무명의 어린 아이의 작은 헌신이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의 기대에 못미치는 답변을 하고 있을 때 제자 안드레는

무리 중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빌립과 마찬가지로 안드레 역시 주님께서 이 작은 음식으로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안드레는 많은 무리들을 먹이기에 이 작은 음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기 위해 어린 아이의 작은 헌신을 예수님께 말씀 드린 것이었습니다.

사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어린아이 혼자서 먹을 만한 음식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계산으로 볼때 안드레의 의견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드레 역시 빌립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답변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작은 헌신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실 때 쓰임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기 위해 어떤 형태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은 엄청난 부자의 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동전 몇푼이라도 과부의 두렙돈 같은 가진 모든 것에 더 관심이 많으시고

그런 것들을 사용해 주심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완성시켜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떤 재료가 현실적으로 준비되어야 이적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인간의 방법의 현실 이해의 벽을 뛰어 넘습니다.

우리가 쓰임 받기 위해 어떤 재료나 물질을 가지고 있어야만 그분께서 이적을 베푸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어린아이의 작은 헌신을 들어 사용하심으로써

인간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제자들을 경계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헌신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작은 음식은 그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불신앙에 대조 되는 큰 믿음이었습니다.

그 작은 헌신은 작은 것을 들어 귀하게 쓰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작은 것에 더 쓰임을 원하십니다.

 

우리들은 말합니다.

돈이 있어야 선교를 하지...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큰 일을 할 수 있어.....

돈,돈,돈...어쩌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먼저 돈을 생각합니다.

돈이 다인 것이 세상보다 교회가 더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더하고, 목회자들이 더합니다.

나는 그런것이 많이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돈은 분명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에는 그분의 재물을 잠시 맡겨 주신 것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생각 하기를 돈이 있어야 선교를 하고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무척 와 닿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현실이다 라고 그런 생각에 박수를 치고 함께 뜨겁게 호응하고 긍정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실체 입니다.

그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실체고, 목회자들이고, 믿는다고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것이 우리들... 어설프게 복음 전도 사역을 한다고, 목회를 한다고 떠들고 있는 일부 사역자들의 실체입니다.

 

사역하는 사람들이 누구라도 돈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단언컨데 저는 평생을 열방의 무수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여러분들 보다 더 많이, 그것도 아주 심각할 정도로 가난합니다.

저는 집도 없고, 가정도 없고, 가진 재물은 더 더욱 없습니다.

하루는 가만히 제 자신을 살펴 본적이 있었습니다.

인생 육십이 넘었고 칠십을 향하여 달음박질 하며 살아 왔지만 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완벽한 거지, 완벽한 빈털털이...완벽한 가난함..빈궁....

그것이 평생동안 열방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살았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적 부자여서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쩝니까? 부자여서(?) 송구 스럽습니다.

 

저와 아둘람 형제들은 완벽한 거지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영적으로 무지하게 부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측량 할 수 없는 풍성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풍성한지 모르실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짐작 하실 수 있는 그 이상의 풍성이 우리안에 충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실상 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떤 것들로 부럽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많은 것을 가진 자들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입니다.

나는 주님의 제자된 사람들은 우리들 처럼 살아가는 것도 멋진 인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 중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부르심의 목적대로 우리를 사용해 주고 계신데 말입니다.

 

오천명 이상이라는 거대한 큰 무리의 허기를 면해 주기 위해 자신의 초라한 도시락을 내 놓을 수 있는 

소년의 아름다운 믿음은 평생을 주를 위해 살아 왔다고

스스로 영적 자긍심으로 가득한 저를 몹씨 부끄럽게 만듭니다.

 

제자들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모인 무리들로 하여금 자리를 정돈하여 앉게 하시고,

어린아이가 준비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놓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시켜 보리떡과 물고기를 무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게 하셨는데

이때 떡과 물고기는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찰 만큼 남았습니다.

 

안드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으로 이 많은 무리를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 의심했었습니다.

빌립은 현실적인 계산으로 많은 무리들을 먹이시겠다는 주님의 뜻을 의심했습니다.

우리들 또한 안드레나 빌립의 회의적인 생각들을 누구나 다 갖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오천이 넘는 무리를 먹이시고도 부스러기까지도 풍성하게 남기는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것도 제자들이 아무 소용도 없다고 판단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풍요는 그 수효의 많고 적음이나 재료의 있고 없음에 상관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관심은 모든 잃어버린 바 된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심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주님은 물고기나 보리떡과 같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병이어를 사용하셔서 이적을 베푸시고,

예수님의 풍요를 드러내심으로써, 희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제자들을 부끄럽게 하셨고,

어린아이의 보잘것없이 작은 헌신을 귀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적을 베푸실 때에 축사하심으로써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아들의 풍요를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당시 무리들은 한편으로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이 진정한 선지자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복음전도의 현장에서 수도 없이 경험하고 목도하는 것처럼

그 군중과 무리들의 고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 사역을 이루실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예수님을 세상 임금으로 오셔서 자신들의 억눌린 처지를 해방시켜 주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것과 다름 없는 오해였습니다.

때문에 저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의 작은 헌신을 통해 이적을 베푸신 뜻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작지만 온전한 헌신이 어떤 역사를 일으키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복음을 통해 예수님으로 말미암으면 아무리 작아도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이기적인 바램만 이루어지기를 기대 했을 뿐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입으로 주를 부르고 마음으로 주를 섬긴다 하였지만 진정으로 온전한 섬김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는 부러움 뿐이라는 것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이적을 볼 수 없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보잘 것 없고 하찮을 것 같은 헌신이 부족해서

그리스도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할 것같습니다.

 

저는 오병이어 저금통을 통해 우리 모두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동전의 가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대부분 외면 당하고 있습니다.

전자상거래, 카드결재, 온라인이체, 핸드폰 결재. 페이팔 등등

현대는 문명의 벽을 허물고 초스피드로 발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현금을 가지고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드물다고 합니다.

동전의 사용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든지 불편한 경제소통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트의 케셔들도 동전 사용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기금모금의 프로젝트가 바로 동전을 모으기 위한 오병이어 저금통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벳새다 들판의 한 이름없는 어린 아이의 변변치 못한 도시락이

주님의 일에 귀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눈으로 보셨을 때는 그분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되어 주십니다.

오병이어 저금통 역시 국내 도처와 열방의 여러 민족과 도시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심는데

아름답게 사용되고 쓰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작은 것이기에 유익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들은 큰 것을 하나님께 드리다 보면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심리적으로 반환에 대한 댓가를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전 같은 작은 것을 드림에 있어서 최소한 우리들은

그런 영적 부담감으로 부터 자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에게

섬김의 자유함에 대한 부담을 덜어 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저의 목표는 100만개의 오병이어 저금통을 만들어 세상에 배포하고 싶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어려운 교회나, 곤고한 장애인, 환우들, 노숙자들,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선한 선물로 나누고, 드리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어떤 분들은 목적에 이끄시는대로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섬기고 있는 선교단체와 선교사님들,

그리고 복음전도 사역에 자신들의 생애를 드리고 있는

이름없는 무명의 복음 전도자들을 위해 사용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저와 저희 선교회의 복음적 사역과 선교사역을 위해서도 동전을 모아 보내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든 동전을 모은 사람들의 자율적인 사용에 대해서 저는 긍정적입니다.

저희가 저금통을 엄청나게 만들어서 다양한 곳에 배포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사용과 쓰임은 동전을 모은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그 권한이 있음을 저는 인정하고 싶습니다.

 

우리들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속에 있습니까?

우리의 작은 헌신과 섬김으로 인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그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주님의 복음을 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통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그 선한 드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벳새다 들판의 한 이름없는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내 놓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뿐입니다.

 

아직 오병이어 저금통은 만들어 지지 못했습니다.

사무국 보고에 의하면 어제까지 약 18만원 정도의 금액이 모아졌다고 합니다.

최소한 앞으로 저금통 제작 작업을 위해서 작업 초기 비용으로 100여만의 금액이 먼저 모금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1만개의 저금통을 우리가 확보하여 본격적으로 배포해 나가기 위해서는

100만여원이 더 요구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갈 길이 멀고도 너무 멉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소망을 포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에 대한 간증을 얻기 원합니다.

진실로 저는 이번 우리들의 프로젝트를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동원하실지 궁금합니다.

 

잠언 16장 9절의 말씀과 19장 20절에서 21절의 말씀이 생각 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9절)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장 20-21절)

 

아멘....아멘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간절히...

주님께서 그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
    홍윤아 2019.09.30 18:35
    목사님, 글 읽으면서 눈물이 났어요. 펑펑 울다가 댓글 남깁니다. 사랑합니다.
    저는 목사님을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목사님 처럼 주님을 위해 살아 갈 수 있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알럽유~~^*^
  • ?
    이민섭 2019.09.30 19:12
    댓글 달지 말라하셔서 조심스럽습니다만... 목사님, 사랑합니다.
    저는 사랑한다는 제 마음의 고백만이라도 꼭 하고 싶어 불손종하여 댓글을 올립니다.
    나중에 혼내 주십시오. 꾸중들을 각오 하고 사랑한다는 말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 ?
    박성겸 2019.09.30 19:15
    ㅎㅎㅎ..민섭형..저도 같이 혼나겠습니다. 혼자 혼나시면 외로우시니 제가 동행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저도 목사님 무지하게 사랑합니다. 그러니 그냥 혼내 주세요. 사랑합니다.

한 소년의 꿈

One boy brought two fish and five loaves of barley b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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