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은 한국오지선교협의회, 선교훈련원 바울의 집, 여호수아 프로젝트 사역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조수아 선교사와 아둘람 커뮤니티 형제들, 그리고 국내.외,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그의 동역자들이 그리스도를 세워 나가는데 경험되어지는
복음전하는 자들의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에 대한 이야기 게시판입니다.

이 게시판은 누구라도 본인의 재정적 손실없이 간접적으로 후원하고 참여하실 수 있도록 쿠팡파트너스 제휴마케팅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참여방법은 게시글에 링크 되어 있는 쿠팡 제휴마케팅 상품 배너를 클릭 하시면 쿠팡으로 이동됩니다.
접속된 상태에서 쿠팡의 상품들 중에 필요하신 상품을 구매하시면, 구매금액의 3% 커미션이 쿠팡으로 부터 정산 됩니다.

조수아 선교사의 복음전도 사역을 위해 자발적인 후원에 동참하시려면 아래의 후원계좌를 이용 하실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 되실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자발적인 후원에 동참해 주십시오.
기도제목을 사역통합 이메일 imole@naver.com 로 보내 주시면 함께 중보하며 기도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 조수아 선교사 복음 전도 사역 후원 (예금주 : 예수의 제자들)

신한은행 : 110 - 329 - 879650 , 기업은행 : 418 - 028581 - 01 - 036
조회 수 321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첫번째 이야기

 

2019년 9월 29일, 주일이 시작되는 새벽 1시 28분 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일주일동안

특별한 철야 기도시간을 갖으면서 느끼고 공감했던 이야기 입니다.

 

저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보여주신 관심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나, 우리들 중 잃어버린 바 된 바로 그 사람들,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서 들어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영적으로 허기져 있는 그 미래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복음적 관심입니다.

 

한 주간 내내 천둥처럼 저에게 들여오는 주님의 음성은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였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그분의 관심을 해결하시기 위해 한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관심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주님의 이 질의에 대한 대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동안 기도를 하면서 그 지혜를 구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꿈으로 환상으로 말씀으로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구한 지혜와 내가 받은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열방의 목전에서서 복음전하는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 이야기는 내 자신에게 해 주는 이야기 이면서 또 누군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인 되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 올려 드립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그 부스러기가 열두 바구니 남았던

주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한 어린 소년에게는 꿈 같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어쩌면 그날, 그 소년은 자신의 것이 드려지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의 자리에

가슴벅차게 서 있는 자신을 발견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소년의 도시락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영광스러운 섬김에 쓰임 받았던 것 처럼,

이 글을 읽게 될 당신도 그 주인공이 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저와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망의 바다에서 항해를 같이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적, 물질적 필요에 대해 공급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말씀으로 진리를 보여주시고, 그것을 설교하고 기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의 모든 필요에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식사를 거르게 된 일에 까지 그분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믿는 우리들의 모든 필요에 관심을 갖고 있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아무리 작은 필요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힘든 문제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공급자이시며 생명의 떡이시며 능력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한끼 식사를 허락해 주실 수도 있고, 우리들의 가장 험난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인간의 필요를 채우려는 시도는 실패 하게 되어 있으며,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데에는 믿음과 신뢰가 필수적입니다.

믿음과 신뢰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떡이시요, 우리의 필요에 대한 공급자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의 관심자는 놀랍게도 섬기는 일이셨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 또는 호수라고도 하는 거기를 건너가셨습니다.

그 호수는 길이를 오늘날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약 21킬로미터, 너비가 약 13킬로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열정적으로 몰려들던 군중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향하고 계신지를 보고는

그 호수 주위를 빙 돌아 걸어서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그 길은 결코 짧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살펴보면 "따르니...봄이어라..." 라는 표현의

헬라어 "에콜루데이....에데오룬...." 라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이 두 단어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래전부터 따르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여러 이적들을 베푸시는 그분의 사역을 목격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계속 주님과 그의 제자들을 따르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군중들을 매일 대하시는 일의 압박감으로 인해 지치고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호수 건너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산의 꼭대기에서 쉬고자 하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단둘이,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과만 함께 있을 시간이 필요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유월절 기간으로서, 수 천명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기슭에 앉으셔서 휴식하시다가 눈을 들어 보셨습니다.

수 천명의 큰 무리가 들판을 가로질러 주님이 계신 산을 향하여 몰려오고 있는 것을 보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큰 무리에는 호수 주위를 돌아 예수님을 따라오고 있었던 사람들과

그동안 선포된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흥분에 사로잡힌 순례자들이 포함돼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관심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의 관심은 바로 무리들이 식사를 거르고 굶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필요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두 번째의 관심은 제자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셧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강화시켜 믿음에 대한 큰 교훈을 가르치시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복음전도자들이 우리들같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우리들처럼 많은 필요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필요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믿음 안에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의 관심은 바로 사람들의 필요 였습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인생들의 필요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한 끼 식사를 거른 사람의 아주 사소한 필요까지 채워주고자 하시는 관심이셨습니다.

여러 날 동안 그분을 따라 다닌 큰 무리는 깨나 긴 여행을 한 끝에 그분이 계신 곳을 발견하고

그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곳으로 마구 몰려온 것입니다.

헬라어 원에에는 이 부분을 무조건 적으로 따른 이라는 뜻의 에콜루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굶주렸고 가진 음식도 없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먹을 것을 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지역인 산촌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일에 너무나도 절박하게 몰두한 나머지

먹는 일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보통때와 같이 예수님은 자기를 그렇게도 절박하게 찾아온 그 사람들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가득차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상황을 통해 제자들에게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고 싶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가장 사소한 필요까지도 채워주고자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사소한 것의 중요함을 잊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제 자신을 보더라도 정말 사소한 것에 대한 소중함이라든지 귀중함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생의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서고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이제 저는 요한복음 6장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1.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후에” ...

이것은 마태복음 4장 12절~25절에 기록된 갈릴리에서의 사역의 끝을 말합니다.

그 사건들은 요한에 의해서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집중적 관심은 예수님의 유대에서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후에”라는 말로 간단히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넘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모든 작은 필요들... 심지어 무리들의 식사를 거르게 된 일에 까지도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 중에는 우리들 처럼 비관적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빌립에게서 나타납니다.

빌립은 비관적인 지신의 신앙을 살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빌립은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에 살았던 제자였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사역의 공금으로 200데나리온 정도쯤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빌립은 제자들에게 그런 돈이 설사 있다 할지라도 그 많은 군중들을

다 먹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께 강조해 드리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현 상황이 인간적으로 부득이하고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관주의적 신앙은 돈과 인간적 자원들을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비관주의적 신앙은 이용 가능한 자원들만 봅니다.

그것은 문제 앞에서 가망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그 상황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자원들로 절망합니다.

그리고 가망 없는 대답에 대해서 압도 됩니다.

 

비관주의적 신앙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능력도 보지 못합니다.

비관주의적 신앙도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런 신앙도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줄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심지어 다른 경우들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이적적 사역을 증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비관주의적 신앙을 지닌 사람의 즉각적 반응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않고 오직 목전의 그 문제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은 그 기회를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정복하시고

그분의 이름을 강하게 증거하시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 내시는 기회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능력은

그 문제가 일으킨 위기들 속에서 잊혀져 버립니다.

 

비관주의적 신앙은 과거에 나타 났던 하나님의 영광 스러운 능력을 망각합니다.

성경은 여러 말씀들을 통하여 이 문제에 우리가 바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마가복음 4:35-41)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16:5-10)

 

비관주의적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생각지 못합니다.

그 마음은 영적인 것들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들에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대부분 영적이지 않고 육적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5-8)

 

비관주의적 신앙은 그 문제가 하나님의 능력에 비해 너무 크다고 느끼거나,

하나님께서 관심을 보이시기에는 너무나 사소하다고 느낍니다.

비관주의적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이 실패할 것과 자기의 믿음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6-8)

 

비관주의적 신앙은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오직 그런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흥미와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10:29-33)

 

비관주의적 신앙도 자기가 가진 것...건강, 돈, 물건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적적 치유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섬기고 도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지원을 확대 시키시는 일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17:14-20)

 

비관주의적 신앙은 하나님께서는 필요들이 제공 되고 채워질 때 영광 받으시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립보서 4:8-10)

 

한편, 우리들 중에는 낙관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낙관적일 수 있으나 의심스러워 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안드레 에게서도 나타납니다.

 

낙관주의적 이면서도 의심스러워 하는 신앙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헌신되어 있는 신앙입니다.

안드레는 그리스도의 관심을 알아 채고 군중들 사이로 가서 먹을 것을 찾이 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지원을 발견하고 모았습니다.

 

낙관주의적 이면서도 의심스러워하는 신앙은 자기가 찾을 수 있는 것을 주님 앞에 갖다가 놓습니다.

그 자원이 아무리 작든지, 그 질이 아무리 떨어지든지, 그것을 모두 주님 앞에 드립니다.

보리떡은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었으며, 만들거나 살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싼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별미를 느낄만한 그런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두 마리의 물고기도 ‘‘작은” 것 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단순하게도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발견하지 못했지만,

찾은 것 전부를, 그 어린 아이, 그  소년과 그의 음식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들은 당면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많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먼저 우리들은 문제에 대하여 불평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빈약한 자원에 대해서도 안달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공급이 적은 것에 대하여 투덜거립니다.
그리고 공급된 것들이 그 품질이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합니다.

우리들의 의심스러워 하는 신앙은 필요에 비해 빈약한 자원을 보고는,

그 자원이 얼마나 빈약하고 그 질이 보잘것 없는가에 먼저 생각이 미침으로써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우리들은 종종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의심을 합니다.

그 필요는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인 음식에 대한 필요일 수도 있고,

우리들의 건강이나 돈, 구원의 필요나 기타 무수한 다른 인간적 필요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필요가 어떤 것이 되었든지 간에, 우리들의 근본적인 필요는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을 배우며,

그분의 사랑과 배려와 지혜와 권능을 의심치 말아야 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래의 말씀들이 우리들에게 한 어린 소년의 꿈을 같이 꿀 수 있게 해 주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6:25-33)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누가복음12:25-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4-7)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4-5)

 

 

* 정중히 댓글을 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 사랑하는 조수아 -


한 소년의 꿈

One boy brought two fish and five loaves of barley bread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 한 소년이 생선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이를 가져왔습니다. 1 2019.10.01 345
3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3 2019.09.30 362
2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 2019.09.29 323
»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2019.09.29 321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